새벽의 살을 에일듯한 추위에 잠그고 돌아선 현관문을 열고 다시 주섬주섬 속옷을 덧 입었다.

옹송그리고 몸을 숙여 보지만 영하 -14도쯤 된다는 날씨에 쉬이 몸이 펴지지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 함박눈이 내릴 거라는 백암산으로의 산행은 좀 설레이기도 하고, 좀 슬프기도 하였다.

'첫눈 오면 만나자'는 지난 약속들은 다 어디두고 이렇게 올해의 첫눈도 두번째 눈도 혼자 맞으러 가는 것일까^^

미국에는 크리스마스 미슬토우(호랑가시나무 장식) 아래에서는 누구와도 키스를 해도 된다던데...

우리는 눈꽃이 활짝 핀 소나무 아래에서라면 누구에게라도 키스해도 좋아요. 이런 풍습하나 만들면 재밌겠다.

두근두근 평소에 좋아하던 그에게 마음 들키지 않고 살짝 입맞춰도 좋을테니 말이다.

아...아...아... 이러다 연애세포 다 죽어버릴라..ㅎㅎㅎ

서울의 추위는 아랑곳없이 장성의 날씨는 거짓말처럼 온화한걸...

남도의 이땅은 항상 올때마다 좋은 날씨로 반겨주네. 두어해전의 편백나무숲도 그 위에 들독재로 오르던 길도 참 좋았었는데...

겨울산행답게 아이젠이며 스패츠며, 바라클라바... 모든 장비가 총출동이다.

눈이 소복소복 쌓여, 은빛의 눈가루고 파우더처럼 날리는 길을 걷는다.

뒤에 오는 산동무들에게 낼름 나뭇가지를 흔들어 눈벼락 맞추기는 예삿일이다.

'까르르... 까르르...' 애나 어른이나 역시 장난질 만큼 재미난 일이 있으려구..

눈쌓인 개울 아래로는 '졸졸졸...살강살강' 물소리가 다정하고, 눈밭사이로 비추는 햇볕은 봄처럼 푸근하구나.

격렬하게 산에 올라 내가 우주의 한점 같다는 생각을 하며, 뜨거운 숨을 헉헉 거릴 때도 좋지만 이렇게 느릿느릿 걸어도 좋은 길은 더 좋은걸...

우와아.... 산정산에는 눈꽃이 한창이다.

차가운 정육면체의 얼음결정체가 이렇게 어여쁜 꽃으로 피어나다니... 세상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만큼 신비로운 일은 없을 터이다.

저 멀리 장성호의 물결이 오렌지빛으로 반짝인다.

호수는 마치 하늘에 오를 것처럼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많이 행복했던 우리의 마음처럼...

눈이 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곱디 고운 눈이라면 언제까지라도 맞을 수 있겠다.

퍼붓는 눈을 얼굴을 들어 맞으며, 살짝 맛을 보았다. 아... 별사탕 맛이구나^^

미끄러워진 길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져도 마냥 신나기만 하였다.

계양루의 풍광은 이미 선계(仙界)에 이른듯 눈발속에 황홀하였다.

어허... 장난끼가 도진 저 부부는 눈밭에 썰매놀이중...

'ㅎㅎ 좋을때다...' 근데 어째 남편보다 어부인께서 끌어주는 시간이 더 길고 기신듯.. 떼끼~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몇시간을 산을 오르고 내려 고단한 발을 쉴 곳이 나오리라.

함께 한 친구들과 동동주를 나누며, 뜨끈한 아랫목에서 좀 쉬다갈 요량이다.

오늘은 이만하면 족하다고, 이뿐이면 참말 행복하다고, 주섬주섬 나는 혼자맛을 어느새 하고 있었다.

<인물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