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꿈 없이 살기를 희망했다.
행복에 대한 강박만 벗어버리면
그곳은 더 없이 평화로운 곳이다.

도시에서 자신을 버리면서
힙겹게 행복을 쫓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와서 이곳에서 지내자.
너는 행복하지 않아도 돼"

산에서 보낸 청춘의 몇 해는,
황홀한 폐인의 나날이었다.
용기는 필요없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아름다운 그곳.

나는 소망했다.
꿈 없이 살 수 있기를,
단 하나의 감격도 없이
최소한으로 살 수 있기를,

희망없이 사는 희망을....












그날....12월의 남해는 봄볕이 넘실대고 있었다.
바다위로 부서지는 빛이 너무 찬란해 차라리 슬펐지려 하였다.

어둑시니한 평산항에 이르러 아직 혼곤한 새벽속으로 발걸음을 찬찬히 옮긴다.
흰색과 노란색의 화살표가 오늘의 길들을 찬찬히 일러주고 있었다.
우리 삶도 이렇게 화살표만 따라가면 길을 잃어버릴 염려없이 살 수 있다면 좋았으려나....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오랫만에 함께 걷는 살가운 동무들의 웃음을 사진으로 남긴다.






산과 바다를 잇닿고 사는 착한 마을의 부지런한 할아버지는 어느새 가을내 정성으로 가꾸신 배추를 지게로 나르신다.
시골 농사일이야 남,녀가 있으려구...
어느새 할머니는 광주리에 가득찬 배추를 머리에 이고 저만큼 성큼 걸어가 버리셨다.















매일같이 뜨는 해요, 한결같은 바다이련만... 이곳의 바람은 달큰하기까지 하다.
이런 풍광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라면 팍팍한 도시에서 행복만을 쫒아 외롭지 않아도 좋겠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아름다운 이곳....
멀어져 가는 풍경이 아쉬워 일부러 뒷걸음질을 치며 걷는다.
어쩜 꽈당하고 넘어져 이곳에서 일어서지 않기를 바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햇볕이 넘실대는 숲속으로 서너명의 남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찬찬히 걸음을 옮긴다.
슬몃 다정도 해보이는 것이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혹.....
'다음 담배는 어디서 피울까요? 형님...' ㅎㅎㅎ









빗속에 까마득하던 작년의 향촌마을과 달리 오늘의 향촌마을은 패치워크로 단정하게 만들어 놓은 퀼트같다.
까르르..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몽돌해안은 오늘따라 더욱 싱그럽기만 하다.






전망대로 오르는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죽은자와 산자의 푸성귀가 나란히 평화롭다.
돌아가신 이의 무덤가에 저리 아무렇지도 않게 꽃도 아닌 푸성귀를 키우는 사람들은 우리네뿐이리라...

반듯하게 어여쁜 정자에 모두 빙둘러앉아 연말기분을 내려고 업어온 향긋한 스페인산 화이트와인을 조금씩 나눈다.












바다위로 부서지는 햇볕이 너무도 찬란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바람이 많은 날이었다면 아무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쯤이야 바람에 날리게 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은 잘 지내나요?'









바다를 코앞에 두고도 깍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세워져 배한척 없는 척박한 어촌마을.... 가천 다랭이마을.
그 가난이 삿갓베미논을 만든 어른들의 억척을 낳았으리라...
곳곳에 벽화와 지붕에 활짝핀 꽃송이만 본다면 어찌 이곳의 팍팍함을 알랴.

막걸리 몇동을 사려 마을아래로 내려온 내게 몇해전 뵈었던 할머니들이 마당안에서 삐죽 고개를 내밀고 '내집 막걸리 사가소' 하신다.
집집마다 다 사드릴 수도 없는 나는 고개를 푸욱 숙이고, 한집에서 막걸리 몇동을 사고 바삐 마을골목을 죄송스런 마음으로 벗어 나고야 만다.
다음에 다시 며칠을 묵는 날... 마니마니 사드릴께요...









거칠것 없이 바람이 이는 삼천포대교위에서 먼바다로 흘러가는 거센 물살들이 여전하다.
저 물살들은 어디까지 흘러가는 것일까?
오늘 남해에서 바라보던 우리들의 추억까지 싣고 까마득한 태평양까지 달려가려는가....

햇볕과 바람, 하늘과 사람.... 모든 것이 다 고왔던 12월의 Some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