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지리산둘레길 새코스 제8구간(셀파님作)
|
|
저장하실 사진 위에 커서를 올려놓고-> 마우스 우측버튼을 클릭 하시고->
[다른 이름으로 그림 저장]을 클릭하여 ->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하시면 됩니다.
삭제할 사진이 있으시면 010-3565-3279(tabanga@naver.com)으로 연락주세요.
▶도보코스: 탑동마을~운리마을~백운계곡~마근담계곡~사리마을(남명 기념관)
▶거리: 총13.4km.4시간30분소요(휴식포함)
탑동마을에서 도보여행을 시작합니다.
고향같은 정겨운 마을 돌담길을 걷는 참석자들.


수령 630년 된 정당매(매화나무)가 마를 한가운데 있습니다.

정당매를 기리기 위한 비석을 모셔둔 곳.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쌍동이 탑이 마을 한가운데 있습니다.
이른바 '동서삼층석탑’입니다.
마을 주변이 통일신라시대의 유명한 사찰 터 '동서사지'입니다.

주변의 당간지주가 이곳이 옛날 옛적에는 아주 커다란 절터 였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탑동마을을 지나 운리마을(원정마을)에 도착합니다.
고향의 봄은 농부들의 부지런한 일손에서 시작됩니다.


원정마을의 오래된 우물터..


운리마을을 벗어나 백운계곡으로 이어지는 운리임도길을 접어듭니다.




운리임도길을 걸으면서 본 지리산 자락의 마을들입니다.
전형적인 남녘 농촌마을입니다.

백운계곡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지리산길을 만드신 분들의
정성이 배어있는 아름다운 숲길입니다.
걷기 수월하면서도 잘 조성된 숲길이 충분하게 이어집니다.



조선 성리학의 으뜸, 남명 조식선생의 주 산책로였던
백운계곡에 도착합니다. 심산유곡에 자리잡은 백운계곡은
지리산 특유의 맑고 청명한 으뜸계곡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계곡에 주점이 들어서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ㅎㅎ





백운계곡을 지나 숲길을 넘어가면, 마근담 계곡의 임도길이
사리마을로 안내합니다. 이 임도길은 약3.9km 내리막길이며,
마근담농업체험마을에서 사리마을로 이어지는 포장길입니다.
뻐근한 포장길이지만 내려가는 내내 마근담계곡과 함께하기에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리마을에 도착하면 조선 성리학의 으뜸, 남명 조식선생을 기리는
'남명 기념관'을 만날수 있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과 정경부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여재실입니다(가묘).
후손들이 이곳에서 추석, 설, 동지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은 조선 선비의 으뜸이다. 그는 스스로 산림처사를 자처하고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선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는 ‘선비는 천자(天子)조차도 마음대로 신하로 삼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선비는 인생의 꽃이요, 국가의 원기(元氣)이며, 민족의 마지막 보루’라고 굳게 믿었다. 선비가 글공부를 하는 것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에게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실행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면에서 동갑내기 이황(1501∼1570)과 생각이 달랐다. 이황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이론으로서만 추구했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착한 범생이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조식은 이황에게 충고의 편지를 썼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 뿌리고 빗자루질 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말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합니다.…십분 억제하고 타이르심이 어떻습니까?”
조식은 성리학만 고집하지 않았다. 도교 불교 양명학 등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그는 평생 어떤 스승으로부터도 일정하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그만큼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선비는 글공부뿐만 아니라 활 쏘고 말 달리는 것도 해야 하며 음양 천문지리 의약도 두루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제자 중에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운 사람이 60여명이나 됐다. 정인홍 곽재우 김면 등 3대 의병장이 모두 그의 제자였음은 물론이다.
남명학파와 퇴계학파는 1589년 기축옥사를 계기로 북인과 남인으로 각각 갈라져 정치적 사상적으로 대립했다. 그러다가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북인은 대대적으로 숙청을 당했고 남인은 서인의 붕당정치 파트너로 그 맥을 이어갔다.
조식은 18세 때 절에서 책을 읽다가 조광조(1482∼1519)가 사약을 받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기묘사화). 숙부 조언경도 그에 얽혀 죽임을 당했다. 1545년 마흔 네 살 땐 절친한 벗들인 이림 곽순 성우가 을사사화에 연루돼 죽었다. 과거시험에 뜻을 접은 이유다.
조식은 지리산을 닮았다. 그는 평생 지리산에 17번이나 올랐다. 그는 지리산을 무릉도원이라고 생각했다. ‘천석의 무게를 가진 큰 종을 보게나/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네/어떻게 하면 저 두류산처럼/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시를 짓기도 했다.
그는 나이 60에 지리산 아래 덕산에 들어가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산천은 ‘하늘이 산 가운데에 있는’ 주역의 대축괘(大畜卦)를 의미한다. 강건하고 독실하게 마음을 닦아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
|
|
| |
|
[윗글]
[아랫글]
|
| |
|
| 한줄답변 |
|
셀파 |
남명 조식선생은 지리산을 닮은 조선의 으뜸 선비이시죠.선생의 성품처럼 고고하고 청아한 8구간입니다. |
2011-03-29 | |
|
|
맑은날 |
남명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둘레길이었습니다..행복하고 뿌듯한...^^산청삼매라 불리는 정당매와 남명매를 다시보니 참 감격스러웠고...지리산 봄꽃인 히어리와의 만남과 장쾌하고 아름다운 백운계곡은 두고두고 기억날 멋진 선물이었습니다~수고많으셨습니다~^^ |
2011-03-29 | |
|
|
셀파 |
구제역으로 인해 8구간 통과하지 못할까봐 걱정 많이 했는데, 구제역 경보가 낮춰져서 무사히 8구간을 완주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 |
2011-03-28 | |
|
|
쏘야 |
적당히 좋은 8코스~
맑고 깨끗한 물소리에 기분이 저절로 좋았답니다^^ |
2011-03-28 | |
|
|
|
|
| |
|
|
|
|